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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님의 사람, 교사여! 이용윤 201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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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njeholy.onmam.com/bbs/bbsView/87/318654

어떻게 해서 교사가 되었어요?”라고 교사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대략 세 가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대답은 놀랍게도“통사정을 해서...”였다. 교사의 수가 부족하다보니 교회학교를 맡은 부장이나 담당 목회자가 적극 나서서 교사를 할 만한 성도들을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잘 안 될라치면 담임목사님에게까지 부탁을 해서 설득을 좀 해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학교 교사들이 교사가 된 이유로‘통사정형’이 제일 많다.

다음으로 많은 이유는‘어쩌다보니형’이다. 아내가 교사를 하고 있어서 도와주다가, 혹은 성경학교 때 일손이 모자라 보조교사를 하다가 교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특별한 계기가 없이 어느 날 보니 교사가 되어 있었다는‘어쩌다보니형’의 교사들이 있고, 마지막으로 많지는 않지만 주님의 뜻으로, 교회학교에 교사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기고 스스로 교사를 시작한‘사명형’교사들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교사로 부르심의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이지, 누가 통사정을 하기에 하는 수 없이 교사가 되었다고, 혹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쩌다보니 교사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언제든지 교사를 그만둘 수 있는 사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유형으로 교사가 되었든지 그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이라는 사실인

것이다. 심히 부족한 나를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하여 교사로 부르신 그 부르심에 아멘 할 때, 그때부터 우리는 교사가 사명이 되는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잊을 수 없는 교사가 있는데, 대전교회 고 유상주 선생님이다. 당시 나는 교육목사였고, 그는 군대를 다 마치지 못하고 전역을 한, 대학 4학년의 젊은 교사였다. 그는 입대 전부터 교사를 했다. 그런데 군에 갔다가 B형간염으로 시작된 간경화가 악화되어 병역 기간을 다 마치지 못하고 제대를 한 것이다. 몸이 아파 제대를 했어도 교회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교회학교 교사를 지원하였다. 그 해 여름,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 교실 몇 칸을 빌려 여름캠프를 하였다. 그 선생님은 복수가 많이 차서 임신을 한 여성 같았지만, 그 몸으로도 캠프에 참여하여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였다. 그로부터 몇 주 후 그는 병이 더욱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그가 떠나기 이틀 전 병문안을 갔을 때, 환한 모습으로 “목사님, 우리 반 애들은 잘 있죠? 지난 주일에는 누가 대신 맡아 주셨나요?”하면서 미안해 했다. 병원을 떠나는 나에게 성도들이 찾아와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주고 간 봉투들을 침대 밑에서 꺼내주며“목사님, 교사들과 식사 한번 하세요.”하면서, 교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그는 언제나 내 마음에 살아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교사는 생명이 다하기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1910년 합병 이후 일본은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들을 압제하기 시작했다. 장년부 회집이 점점 어려워지자,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어린이들을 교회로 불러 모아서 민족교육과 문맹퇴치, 그리고 신앙교육을 하게 되었다. 1913년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결성되고 통일공과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928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5회 세계주일학교대회에 한국대표를 처음으로 보냈는데, 한국대표가 그곳에 가서 보고하기를“한국의 어린이들 82%가 예배당을 드나든다.”고 하여 참석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 우리가 생각을 해봐도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1938년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강제로 해산되고, 1945년 해방과 1950년 6.25전쟁 등 한국교회의 교회교육은 1960년대 초반까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암흑기로 접어들고 말았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30여년이 지난 1960년대 중반이 되자 한국교회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곳곳에 교회가 개척되고 우뚝우뚝 세워져 갔다. 30여 년 전 예배당을 드나들던 바로 그 아이들이 장년이 되어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요즘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누가 통사정을 해서 교사가 됐든지, 어쩌다보니 교사가 됐든지, 하나님이 그렇게 나를 교사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내 생명이 다하기까지‘평생 교사’가 되어 책임을 다하는 교육적 사명으로 뜨거워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우리 반 아이들, 우리 교회의 교회학교만이 아닌, 10년 후의 아이들, 30년 후의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겠다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는 것이 이 시대 교사라는 것을 인식하고, 현실은 어렵지만 예배당 한 모퉁이에서 다른 교사들과 함께 기도하며 열정으로 불타는 우리 성결교회의 교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활천 4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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