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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기 양육훈련 간증문 운영자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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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1) 노진현 집사

나는 하나님께 고백할 일이 무엇일까? 어릴적부터 느껴온, 하나님을 믿는 것이 나름대로 자격증을 부여 받은 사람이고, 자신의 언행을 숨겨야만 하나님의 뜻하심과 부합 한다고만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이 스스로 훈련함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주말에 교회에 나가면 다른 성도들과 비교도 하게 됩니다. “나는 믿음이 부족한 걸까?”

목사님 이하 모든 성도들의 은혜와 응답 받음을 신기하게만 여기고 “나는 언제쯤이나 그런 체험을 할까?” 라는 의구심도 수 없이 느끼곤 합니다.

많은 고민과 추상적으로만 접근할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로서 지혜가 부족함에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양육훈련을 마치고 믿음에 대한 성장을 가늠해 보는 기간이었음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몇 년 전 딸이 겨울 한 복판에 차가운 공기에 방황하는 상황이 못내 안타까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고민속에 미국으로 보내고도 마음 졸임은 여전했지만 지금의 딸의 모습을 볼 때면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여겨지더군요.

나름 교회에 본격적으로 다시 다니게 된 계기 일수도 있는 시기였습니다.

좋지 않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늘 해결책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주님으로부터의 계획하에 일이 진행됨에 ‘순종’이란 단어에 눈을 뜨고, 기도 드림으로 부족함이 채워지는 것 들에 감사함을 배워 나갑니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것을 느끼고 기도를 드리면서 주님의 임재함에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간증2) 김보리 집사

   안녕하세요, 저는 인제 갯골에 위치하고 있는 예비군훈련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보리 집사입니다.

보리라는 이름은 다들 불교적인 이름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 간단히 제 이름을 소개 하자면 먹는 곡식 ‘보리' 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가 먹는 보리를 좋아하시기도 했고, 벼를 추수하고 보리씨앗을 뿌려 놓으면 추운 겨울철 눈속에서 새싹을 틔운다 하여 강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신앙의 시작은 중학교시절 친구따라 탁구치러 교회를 갔다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대해주는 사람들이 좋아 교회를 정식적으로 다니게 되며 하나님을 접했습니다. 군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시절 믿고 의지하니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봉사도 하며 사명감도 얻어 갔습니다.

강원도 철원일대 운천이라는 1기갑여단에서 군생활을 시작하여 30기보사단, 26기보사단, 홍천에 있는 3기갑여단에 거치며 줄 곧 기계화부대에서만 약 10여년간 근무를 해오며 군부대 안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교회 안에 적게는 목사님과 10여명의 병사들과, 많게는 10여명의 간부가족들과 100여명의 병사들이 초코파이와 피자, 햄버거에 큰 감사함을 느끼는 곳, 오로지 국가의 안보와 각 종 위험한 훈련간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소박한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진급을 앞두고 병사 부모님과의 민원, 소속 간부들의 사고들이 잦아지며 불안한 부대관리가 겹치며 갑작스런 부대 이동으로 이 곳에 오기 전까지 심적으로 많은 힘듬 속에 있었습니다. 이곳에 부임되며 예비군 부대에서의 첫 근무에 많이 낯 설어 하며 적응기에는 이곳에서 코 앞 업무에만 정정긍긍해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니 내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닌 진급과 업무만 보였습니다. 조급함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업무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나날은 계속되어 갔습니다.

부대에서 정창진 권사의 계속되는 신앙지도에 또 목사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양육훈련의 기회가 있게 되어 정신없는 부대생활에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반신반의에 양육훈련 참가를 결심하였습니다. 업무적인 부담감과 훈련에 두 번이나 빠지며 하나님께 비쳐지는 죄책감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부족한 준비에도 3주차부터 무조건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교회에 낳아 갔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만큼은 이렇게 평안하고 좋은데, 하나님 앞에만 서면 계획이 눈앞에 보이고 잘 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이렇게 바보처럼 있었나 싶었습니다. 물론 군생활을 잘 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인정도 받으며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제 발표난 진급을 앞두고 또 진급에 비선된 결과를 보며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과연 진급이 될까? 무엇이 부족하여 진급이 안 되었을까? 많은 생각이 교차했지만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은 더 넓은 제 군생활의 목표와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제 군생활의 비전은 기계화부대의 훈련여건 조성입니다. 기계화 부대는 큰 위험성, 진동과 소음, 먼지 등으로 많은 민원 등으로 있었던 훈련장 잃어가고 있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군인이 싸워서 이기려면 훈련을 해야 하는데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이런 저런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며 주신 하나님의 응답을 얻으니 지금 당장의 진급은 작은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새 눈을 띄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양육훈련에 참석하지 않고 또 하나님 앞에 다시 되돌아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코앞에 놓여진 일에만 정정긍긍하며 힘들었을 모습이 보입니다. 현실에 충실하고 하나님을 내 삶에 우선순위 1로 정하며 낳아 가는 삶. 하나님을 알아가며 기도하는 삶. 이제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길로 낳아가니 마음도 평안하고 더 좋습니다. 또 구체적인 비전까지 제시해주시니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약 15년차에 창피한 일이기도 하고 또 이번 양육훈련에 제일 불량하게 참석한 성도이지만, 이제서라도 기독교인으로써 하나님을 대하는 법도, 기도하는 법도, 전도하는 법도, 조금씩 알아가니 너무 행복하고 하나님께, 인제성결교회에, 또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만약 이런 시간이 또 주어진다면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간증3) 신미영 집사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 교회가 어떤곳인지 알지 못하던 때에 저는 참 이기적이고 비판적이 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봉사하던 제 동생에게 네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잘 되면 나도 교회에 갈께 라며 가슴 아픈 소리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행복하지 못했고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며 딸과 함께 지쳐 가고 있었습니다. 모든건 제 욕심 때문이 었던것 같습니다. 제 욕심에 맞게 아이를 키우고 싶어 아이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고 흔들리게 되었을 때 미국에 계신 고모가 교회에 나가라며 참 열심히 전화를 하였습니다.

고모의 정성을 생각하여 처음 혼자 교회를 찾아갔을 때가 생각 납니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궁금했습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에 쉬지 않고 이곳에서 무엇을 기도하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조금씩 걸어 오다보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딸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하면서 처음으로 간절하게 기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모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이라며 선뜻 딸을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저희에게는 모험에 가까운 결정 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 처음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서 낯선 환경에 부딪 혔을 때 그 두려움은 제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이었고 제평생 울 수 있는 눈물은 그때 다 흘렸던 것 같습니다. 날마다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제 기도 를 다 들어 주셔서 지금 제 딸은 너무나 행복하게 공부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어린 딸을 혼자 미국에 두고 돌아와서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인제성결교회로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셨고 목사님의 말씀에 반하여서 지금은 남편이 저보다 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음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남편과 양육훈련을 함께 받으며 목사님과 김보리 집사님 김정희 집사님 ~ 너무 깊은 신앙심에 감동도 받고 대화도 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고 이제는 저도 더 성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나누고 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간증4) 신정희 집사

저는 어린 시절 교회를 잠깐 다니긴 했었지만 너무나 어린나이였고 짧은 시간이었기에 주님과의 뜨거운 만남과 신앙생활에 대한 별 기억은 없습니다.

저희 집은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집으로 시집온 어머니께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몰래 때로는 싫은 소리를 들으시면서 교화에 나가셔서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던 어머니께서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사고가 있은 후 친가는 물론 외가쪽 까지“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신다. 만약 계시다면 엄마만 그렇게 죽게 하지 않으셨다.”며 하나님을 부정하고 교회에 대한 불신이 생기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 저도 하나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나가지 않고 점점 주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믿지 않는 신랑을 만나 결혼 후 신혼 초 신랑부대의 대대장님께서 반 강압적인 말씀에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지금 이곳 성결교회까지 10번의 교회를 옮겨 다니며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다시 찾고 주님 곁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살아생전 저희들을 위해 기도하신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 것 같습니다.

이곳 성결교회에 등록하고 목사님의 권유로 양육훈련을 시작하면서 문득 작년에 기도 드렸던 기도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그동안 군 교회를 섬기며 모든 교회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들이 말씀보단 여러 가지 봉사로 섬기다 보니 아버지라 부르는 주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말씀을 더욱 알고 싶었기에 이젠 “마르다 보단 마리아 같은 여종이 되고싶다.”는 기도를 드렸었습니다.

이렇게 양육훈련을 통해 주님을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주시니 주님의 인도하심과 기도의 응답인 것 같습니다.

양육훈련 첫 주 목사님께서 내어주신 숙제가 있었습니다.

양육훈련 끝날 때까지 매일 말씀읽기. 하루 최소 1장이라도 말씀 보기였습니다.

매일 매일 말씀 보기란 쉽지는 않았지만 숙제라는 의무감에 말씀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주말에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11시 55분에 말씀을 펼친날도 있었습니다.

아직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말씀 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올해는 첫 성경일독이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복음확인의 시간으로 양육훈련을 시작하여 기도문을 작성해보고 말씀과 예배생활을 통하여 성경책에 대해서도 다시금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덧 마지막시간 자신감이 부족한 저에겐 제일 힘든 숙제가 있었습니다.

전도하는 생활 숙제로 내어주시는 전도하기가 너무 부담이 되었습니다.

전도 대상자는 많았지만 자신감이 부족했고 막상 복음을 전할려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숙제니 안 할 수도 없고 고민 끝에 몇일전 아랫집에 사는 4학년 아이가 친구 따라 교회 나가기 시작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아이에게 숙제라며 부탁을 하고 복음을 제시하고 영접기도까지 드렸습니다. 그렇게 전도하기 숙제를 마치니 엄청난 큰일을 해낸 듯 너무나 뿌듯했습니다. 아직 전도해야할 시댁, 친정 식구들이 많기에 용기 내어 한사람, 한사람씩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주님 곁으로 인도하는 일이 저의 끝나지 않는 숙제로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보려 합니다.

6주간의 훈련을 통하여 주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에 감사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해주신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간증5) 문재림 집사

교회를 처음 가게 된 건 초등학교 1학년 친구가 주일학교에서 선물을 준다며 저를 전도를 했었고 몇 번 교회에 출석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후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집주인아저씨를 통해서 중학교때 다시 교회에 다니게 인도해주셨습니다. 어른이 말씀하시니깐 거절하기도 힘들었고 교회 출석만하고 나오는데 교회선생님께서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저를 관심있게 봐주셨고 조용히 성실히 나오는 모습이 예뻐보였다고... 이사를 온후였기에 친구도 별로 없었고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주셨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낯설었지만 선생님을 통해 교회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청년때까지 쭈욱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졸업후 취업과 비전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몰랐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마음의 어려움은 기도하게끔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저의 환경은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무슨일을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어떤사람이 되길 원하시나요?” 그래도 감사한건 교회를 계속해서 다닐수 있게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청년부 임원으로 양육받게 해주시고 후원을 받아 몽골, 캄보디아, 태국 해외로 단기선교를 다녀오게 해주셨고 유치부주일학교 선생님으로 9년을 꾸준히 봉사 하게 해주셨습니다. 교회봉사를 통해서 저는 무엇을 그리고 만들고 하는것을 좋아하고 재밌어 한다는걸 알게 되었고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대입시를 알아보게 되었는데 학원비의 부담이 커서 감히 도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당시 저는 보습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들중에 한분이 그림을 취미로 배우고 싶다고 학원근처에 화실을 봤는데 같이 가보자고 했습니다. 얼떨결에 따라나섰고 함께 취미로 배우는 것을 시작하였습니다. 화실선생님의 권유로 학교에 가보는것이 어떠냐고 했습니다. 백석예술대학 2년제 미술전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아보니 전문대졸업 특별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당장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면접을 봤고 합격하여 꿈에 그리던 그림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하지요... 학교만가면 그림이 저절로 그려질거라 생각했나봅니다.

미대입시를 하고온 친구들은 실력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취미로 배운게 다였기에 수업에 따라가기가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2년제 대학이다 보니 4년제 미대에서 배우는걸 짧은시간에 속성으로 배우는 것이라 시간이 참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했기에 과제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등하교 시간도 오고가는데 4시간씩... 이른 새벽에 나가서 과제하고 저녁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늦게까지 집에서 과제하고... 큰 캔버스와 물감을 들고 다니며 과제하기에 바빴습니다. 공강이 있거나 토요일에는 인사동 갤러리를 다니며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아이디어를 찾으며 자료를 모았습니다. 어느 날은 저녁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무거운 캔버스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체력도 바닥,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쭈룩 흐르는 겁니다. 내가 늦은 나이에 이렇게 도전해서 얻는게 무엇일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것이기에 기도하며 마음을 다시 다잡았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하나님은 많은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셨습니다. 색연필을 새로 사야했는데 돈이 없어서 고민중 일때 교회에 친하게 지낸 언니가 학교 열심히 다니냐며 물감과 색연필을 선물로 주었고 공모전에 그림을 접수하고 싶은데 접수비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때 10년만에 해외에 있던 삼촌이 연락이 와서 잘 있냐며 학교로 찾아와 주셔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공모전에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오면서 아침을 챙겨먹지 못했고 ‘하나님, 배가고픕니다’라고 살짝 기도했는데 제 기도를 들어주신걸까요? 수업에 들어가니 교수님께서 간식을 사오셔서 학생들과 나눠먹게 하셨습니다.

더욱 감사한일은 백석예술대학이 기독교 대학이여서 매주 예배드리는 시간과 기독교에 대한 교양필수 과목이 학과일로 바쁜 저에게 영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점 입니다. 그리고 미술과 학과장님은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늘 신앙과 연관 지어 그림을 보게 하셨고 그리게 하신점입니다. 배울 때는 무섭게 가르치셨지만 그 무서움은 실력을 향상하는데 밑걸음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학년 졸업반이 되면서 다이어리에 올해목표를 적었습니다. 성경1독, 공모전에 우수상도전, 학과1등하기, 졸업전시준비하기 막연히 적었었던 기억이 나는데 바쁘게 2학년 생활을 마무리 지으며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적었던 목표들을 보니 모두 이루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졸업 후에도 하나님의 인도로 학과 행정조교로 일하게 하셨고 교수님께 조금씩 그림지도도 받게 해주셨습니다. 고난 뒤에 축복이라는 말씀은 지난시간들을 되돌아 보니 힘들기만 했던 시간들이 지금에 저를 있게 해준 과정들이 였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그림의 주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크리스챤 동문들이 있어 매년마다 전시를 하고 판매수익금의 절반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느라 그림그리는 것이 수월하진 않지만 첫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양육훈련은 청년때도 받았었는데 그때는 머리로만 이해하고 넘어갔던것 같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양육훈련을 받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더 큰 은혜로 다가옵니다. 일만하는 남편이 미울때도 있지만 가정을 위해서 늘 성실히 힘내서 일하는 남편에게도 감사하고 돕는베필이 되도록 기도로 힘써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해주셔서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하셨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아이들과 가정예배를 드리도록 하나님과 함께하는 가정이 되도록 힘써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인제로 이사와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고 왜 여기로 보내주셨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시기 위함 같고 제 삶을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하며 나태함과 안일한 생각들을 회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하며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을 소중히 생각하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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